The decision maker of randomness. It undermines the belief that an artist uses authorial intent to determine each part of an artwork. My works present a separation between an artist’s control and an artwork by letting chance mostly decide the painting process.

Sensuous decisions and choices add relatively little to the painting process. A work of art is regarded as attached very closely to the artist’s identity. Painting especially is often understood as an expression of an artist’s volatile emotional state or a result of intense aesthetic deliberation. My practices for a painting aim to challenge this myth of artistic creation. There are some principles for my process. First, I decide ‘not to make decisions’ or as few as I can. Second, I use ‘arbitrary’ numbers and effects to avoid an ‘arbitrary’ link between my ego and the work. Third, the result can be beautiful, but the beauty is not the end of the process. Fourth, I accept that the system is imperfect; there will be contradictions, limitations, and lapses. I do not want to trap the works in a perfect, closed loop of form and intent. Last, the rules should be able to operate without the artist.

Chance operates in my work as random numbers, irregular shapes and contingent effects relying on the intrinsic nature of my material. For example, in some early works, I cut polygons out of a contact paper. The shapes were decided by random numbers, I threw the shapes down on the canvas, spray painted the surface, the polygons created negative spaces on the canvas. More recently, I dyed the canvas with pigments of colors chosen blinded, throwing down the torn paper on it, painting over the surface, spraying through the blank space of the torn paper. In this way, all of paintings have a sort of procedure, but it is not necessarily mathematical or geometric.     

By seeking objective rules and procedures, I want to state that art should not be a mythical exaltation of the individual, but be a liberation from one’s ego. I consider myself a generator of algorithms and performer of the rules. It might be seen as if I have all control over the paintings, but once an algorithm is set up, anyone can realize it without skillful hands or delicate sensibilities to colors and forms. The rules, randomness, forms and colors exist outside of an artist.

‘우연’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위에 표시하는 공집합 부호이다. 우연은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뜻하지 않는 빈 기호이며, 예측 불가능한 무엇을 다룰 때 동원되는 무작위 변수다. 그러나 ‘셔플’을 눌러 음악 을 멋대로 재생시키는 것 외에, 이 예측 불가능성은 보통 환영받지 못한다. 웹사이트 개발자들은 클릭 수와 방문 기록을 수집해 어떻게든 당신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고 애쓰고, 당신은 그동안 내린 조잡한 선택들의 집합으로 정체화된다. 선택이 모여 취향이 되고, 관심이 되고, 곧 당신이 된다. 직업 과 기회를 얻기 위해 끊임 없이 자기를 ‘소개’해야 하며,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인간인지 ‘검증 가 능한’ 경험들로 증명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 증명과 자기 규정의 끝없는 연쇄 속에서 더 이상 ‘내’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은 초라하다. 그러나 나는 회화의 영역 안에서 최종적인 선택의 자리에 나 대신 ‘우 연’과 ‘예측 불가능성’을 놓고 작은 주체성의 게임을 벌이고자 한다. 내 작업 과정에서 우연은 때로는 서로 관계 없는 숫자들의 조합으로, 찢어낸 종이가 떨어진 자국으로, 젖은 표면에서 번져나간 물감의 흔적으로 남는다. 통제하기 어려운 물성의 교차 속에서, 나는 시스템의 고안자이자 처음과 끝을 주재 하는 이로 물러나 앉아 있으려고 한다.

나는 언제나 작은 스케치 대신, 일련의 프로세스를 글로 적어나가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나 자신 도 작업이 어떻게 끝날 지 알 수 없고, 알 수 없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비전을 실현해나가는 것은 나 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알 수 없었던 어떤 것, 아직까지 보지 못한 어떤 이미지에 종착하고 싶다. 즉 내면에 자리하는 어떠한 심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물질로 시작해 서 물질로 끝나는 여정의 잔여물로서 회화가 남길 바라고, 한편으로는 규칙적인 절차의 기계적인 생 산물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예술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나’의 ‘고유함’이라는 표식으 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로, ‘나’는 특별하고 우월한 무엇으로 규정되기 보다 규정되지 않는 공백 으로 남기를 원한다. 예술에 한해서는, 회화의 표면 위에서 모든 결정권을 쥐고 흔들며 ‘나 자신’을 표 현하기 위해 시각적 전횡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물성과 타협하고 최대한 결정권을 내려놓으며 크고 작은 선택의 자리를 우연성에게 내어주려고 한다. 물감을 번지게 한 뒤 말리고, 찢어진 종이를 화면 위에 떨어트린 후에 전면을 칠하거나 뿌리고 종이를 떼어내는 방식을 반복하는 것이 나의 주된 방법 론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그림에 레이어가 생겼다. Random Studies (petite loin)>과 <Random Studies (lacerate sucker)>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는 디지털적인 수단을 응용한 것으로, 무작위적으로 보이지만 고유의 생성 알고리즘을 갖고 있는 자연물의 이미지(불, 물, 바위, 구름 같은 것들)에서 벡터 패턴을 추출해 커팅하여 레이어의 형태를 만들었다.

본 전시는 현 시점 추상 회화가 처한 형식적, 개념적 문제들에 대처하는 일관된 주제의식 속에서 다양 한 각도의 접근을 보여줄 것이다. 작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아도, 미적 성취는 가능한가? 얼마나, 어디까지? 자문자답의 여정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지속되겠지만, 전시될 회화들에서는 추상적 이 미지가 전적으로 개념에 의해 종속되지 않으면서도, 작가의 주관적인 미의식이 화면 전체를 독재하지 않는 순간들을 함축하고 있다. 반-자동적인 형식적 결정의 연속이 낳을 수 있는 미적 효과를 탐구해 온 여정이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하나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